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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모리 시장에서 사과 파는 할머니랑 10분 동안 대화했는데 나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음
일본어 2년 공부하고 간 거라 사과 몇 개 사는 정도는 자신 있었음
할머니가 사과 하나를 들고 뭐라고 길게 말씀하셨고 나는 일단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음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할머니가 봉지에 사과를 하나씩 더 넣으셨음
할머니가 사과 한 조각을 깎아서 내 입 앞에 내밀고 "케" 한 글자만 하셔서 받아먹었음
옆 가게 할아버지가 그걸 보더니 박수를 치면서 뭐라고 한마디 하셨는데 그것도 못 알아들었음
내 일본어가 이 정도였구나 싶었음
봉지는 이미 사과 일곱 개로 터지기 직전이었음
같이 여행 온 도쿄 친구 사키를 불러서 통역 좀 해달라고 했음
사키가 할머니 말을 한참 듣더니 나를 돌아보고
일본 나고야 게스트하우스에서 컵라면을 먹고 자면 다음 날 내 자리 옆 쓰레기통이 늘어나 있었음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한국 컵라면을 잔뜩 챙겨 가서 밤마다 공용 테이블에서 먹은 게 다였음
같은 테이블엔 매일 밤 맥주를 마시는 도쿄에서 온 대학생 손님이 있었음
첫날 밤 사장님이 내 빈 컵을 가리키며 웃으며 「호캇토이테」 하고 지나갔음
일본어 2년 공부한 내 귀엔 「그냥 내버려 둬」로 들려서 고맙다고 하고 방에 들어갔음
아침에 보니 빈 컵은 치워져 있었고 내 의자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하나 놓여 있었음
그날 밤 빈 컵을 두고 「호캇토이테?」 하고 묻자 사장님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음
다음 날엔 쓰레기통이 두 개가 됐고 그 위에 화살표를 그린 포스트잇까지 붙어 있었음
분리수거를 잘하라는 건가 싶어서 그날 밤엔 컵을 깨끗이 헹궈 테이블에 예쁘게 세워뒀음
그걸 본 대학생이 맥주를 마시다 말고 캔을 내려놓더니
「호카루는 나고야 말로 버린다는 뜻이야」 대학생이 웃음을 참으며 천천히 일본어로 말했음
사장님의 「호캇토이테」는 내버려 두라는 게 아니라 「버려 둬」라는 말이었음
표준어로 내버려 두라는 말과 소리가 비슷해서 다른 지역 사람들도 자주 헷갈린다고 함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 어른이 「욕봤다」 했는데 욕먹었다는 줄 아는 거랑 비슷함
늘어난 쓰레기통도 화살표 포스트잇도 끄덕이던 사장님도 전부 「여기 버려」라는 뜻이었던 거임
나는 매일 밤 「내버려 둘까요?」 묻고 사장님은 「응 버려 둬」 하고 끄덕인 거였음
그런데 대학생이 웃다 말고 자기도 첫날 똑같이 빈 캔을 세워뒀다가 쓰레기통을 받았다고 했음
「그래서 매일 밤 네가 어떻게 하나 보려고 여기서 마신 거야」 하고 얼굴을 가렸음
그 얘기를 들은 사장님은 「호카루가 사투리였어?」 하며 우리 둘보다 더 놀랐음
사장님은 미안하다며 나고야 명물 닭날개 데바사키를 한 접시 튀겨 내왔음
지금도 그 대학생은 내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호캇토이테」 한 마디로만 답함
버리라는 건지 내버려 두라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음
일본 구사쓰 온천에서 수건을 탕에 담갔는데 할아버지들이 하나둘 머리에 수건을 얹었음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동네 목욕탕에서 하던 대로 수건을 적셔 어깨에 덮은 게 다였음
같이 간 일본인 친구는 노천탕부터 간다며 먼저 나갔고 실내탕엔 할아버지 두 분과 나뿐이었음
맞은편 할아버지가 내 어깨 수건을 한참 보더니 자기 수건을 접어 머리 위에 올렸음
옆 할아버지는 수건을 탕 가장자리 돌 위에 올려두고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켰음
일본어 2년 공부했는데 두 분 다 말 대신 몸짓만 해서 무슨 뜻인지 몰랐음
온천에서 하는 인사인가 싶어서 나도 젖은 수건으로 내 머리를 톡톡 치며 고개를 숙였음
그러자 맞은편 할아버지가 말없이 탕을 나가더니 마른 새 수건을 가져와 내 머리에 얹어줬음
내 인사가 뭔가 틀렸나 싶어서 젖은 수건을 꼭 쥐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음
그때 노천탕에서 돌아온 친구가 내 머리 위 수건과 손에 든 젖은 수건을 번갈아 보더니
「수건 탕에 넣지 말라고 두 분이 계속 알려주신 거야」 친구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음
일본 온천에선 물을 다 같이 깨끗하게 쓰려고 수건을 탕에 담그지 않는다고 함
그래서 수건은 머리 위에 얹거나 탕 밖 돌 위에 두는 게 보통이라고 함
한국으로 치면 수영장에서 다들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수모 쓰라고 하는 거랑 비슷함
머리 위 수건도, 돌 위 수건도, 마른 새 수건도 전부 「수건은 여기」라는 몸짓이었던 거임
그런데 나는 탕에 적신 수건으로 내 머리를 치면서 알겠다고 인사까지 하고 있었던 거임
친구가 그 얘기를 통역하자 두 할아버지가 실내탕이 울리게 웃었음
나올 때 맞은편 할아버지가 자판기에서 커피우유를 하나 뽑아 내 손에 쥐여줬음
온천 끝나고 마시는 차가운 커피우유는 진짜 달고 시원했음
그날 이후 친구는 내가 뭘 잘못하면 말 대신 자기 머리를 톡톡 침
어제도 카톡으로 머리 톡톡 치는 사진만 한 장 보냄
일본 삿포로 공원에서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는데 다음 날 눈사람이 그 장갑을 끼고 있었음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엄마가 떠준 빨간 벙어리장갑 하나만 믿고 겨울 삿포로에 간 게 다였음
전날 밤 숙소 가는 길에 지도 보느라 장갑을 벗었다가 한 짝을 어디 흘렸는지도 몰랐음
아침에 같은 길로 가보니 공원 입구 눈사람 나뭇가지 팔에 내 빨간 장갑이 끼워져 있었음
장갑 위에는 누가 비닐봉지를 씌우고 고무줄까지 감아놨음
동네 아이들 장난인가 싶어서 장갑을 빼려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걸음을 멈췄음
아저씨는 눈사람이랑 나를 번갈아 보더니 팔짱을 끼고 나를 지켜봤음
개를 산책시키던 아주머니도 멈춰 서서 「아라」(어머) 하고 입을 가렸음
남의 눈사람 장갑을 훔치는 외국인으로 보이나 싶어서 손이 그대로 멈췄음
주머니에 남은 빨간 장갑 한 짝을 꺼내 들어 보이자 아주머니가 손뼉을 치더니
「주인 왔네! 그거 당신 거였구나」 아주머니가 번역기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음
일본에선 길에서 주운 물건을 가져가지 않고 주인 눈에 잘 띄는 높은 곳에 올려둔다고 함
한국으로 치면 공원에 떨어진 목도리를 누가 벤치 등받이에 걸어두는 거랑 비슷함, 근데 더 정성스러움
장갑을 주운 누군가가 눈에 파묻히지 않게 눈사람 팔에 끼우고 비닐까지 씌워둔 거였음
팔짱 낀 아저씨도 엉뚱한 사람이 가져갈까 봐 내 장갑을 지켜보던 거였음
두 짝을 맞춰 보이자 아저씨가 팔짱을 풀고 엄지를 들었음
그런데 장갑을 빼자 아저씨가 「손 시렵겠다」 하며 자기 핫팩을 눈사람 팔에 꽂아줬음
아주머니가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같이 웃다가 콧물이 얼 뻔했음
엄마가 떠준 거라고 하자 아주머니가 가방에서 끈을 꺼내 내 장갑 두 짝을 이어 묶어줬음
그래서 남은 여행 내내 초등학생처럼 장갑을 목에 걸고 다녔음
마지막 날 공원에 가보니 눈사람은 아직 아저씨 핫팩을 쥐고 있었음
아무도 안 가져감
일본 히메지 버스에서 한 정거장 일찍 캐리어 들고 일어났는데 버스가 출발을 안 했음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한국 버스처럼 미리 문 앞에 서 있어야 안 놓친다고 생각한 게 다였음
정류장에서 손님이 다 탔는데도 기사님은 문을 열어둔 채 백미러로 나만 보고 있었음
기사님이 마이크로 천천히 뭐라고 했는데 일본어 3년 공부한 나도 못 알아들었음
앞자리 할머니가 나를 보며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쳤음
교복 입은 학생은 내 캐리어를 한 번 보더니 하차 벨을 대신 눌러줬음
버스는 여전히 서 있었고 기사님은 같은 말을 한 번 더 했음
버스를 잘못 타서 여기서 내리라는 건가 싶어 열린 문 쪽으로 한 발 더 붙었음
할머니가 옆자리를 더 빠르게 톡톡 쳤고 기사님이 학생한테 뭐라고 부탁했음
학생이 휴대폰 번역기에 한국어로 뭔가를 한참 치더니
「버스가 멈출 때까지 앉아 계세요 그래야 출발해요」 학생이 번역기 화면을 내밀었음
일본 버스는 달리다 넘어지지 않게 완전히 설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는 게 기본이라고 함
기사님은 캐리어 들고 문 앞에 선 나를 보고 내가 앉을 때까지 출발을 기다린 거였음
할머니 옆자리도, 대신 눌러준 벨도 전부 「앉아도 안 놓쳐요」라는 뜻이었던 거임
한국 버스는 미리 안 일어나면 그냥 떠난다고 하자 학생이 통역했고 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렸음
내가 할머니 옆에 앉자마자 기사님이 문을 닫고 바로 출발했음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가 완전히 서자 기사님이 백미러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음
내릴 때 할머니는 사탕 하나를 쥐여줬고 학생은 내 캐리어를 문 앞까지 밀어줬음
한국에 돌아와서 버스에서 내 정류장까지 끝까지 앉아 있어 봤음
기사님은 문을 닫고 그대로 출발했음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음
일본 에히메 시골길을 흰 바람막이 입고 걷는데 할머니들이 나만 보면 손을 모으고 절했음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귤밭 구경하려고 한국 등산복에 등산 스틱까지 챙겨 간 게 다였음
작은 절 앞을 지나는데 마당 쓸던 할머니가 빗자루를 내려놓고 나한테 두 손을 모았음
나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더니 할머니가 더 깊이 숙이고 내 뒷모습을 한참 지켜봤음
귤밭 앞에서는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귤 한 봉지를 내밀며 「오셋타이」라고 했음
돈을 꺼내자 아저씨는 손을 크게 젓더니 봉투를 내 배낭에 쏙 넣어버렸음
지나가는 차들도 내 옆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운전석에서 고개를 까딱했음
내 한국 등산복이 그렇게 멋있나 싶어서 스틱을 짚고 더 씩씩하게 걸었음
저녁에 예약해 둔 민박에 도착하자 사장님이 내 흰 바람막이와 등산 스틱을 번갈아 보더니
「오늘 몇 번째 절에서 오셨어요?」 사장님이 번역기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음
시코쿠에는 절 88곳을 걸어서 도는 순례길이 있고 순례자는 흰 옷에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고 함
동네 사람들은 순례자에게 귤이나 사탕을 건네며 응원하는데 그걸 「오셋타이」(대접)라고 부름
한국으로 치면 국토대장정 하는 학생한테 동네 슈퍼 사장님이 음료수를 쥐여주는 거랑 비슷함
할머니의 합장도, 귤 한 봉지도, 속도 줄이던 차들도 전부 나를 순례자로 본 거였음
귤 구경하러 온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사장님이 배를 잡고 웃더니 할머니처럼 손을 모아 보였음
다음 날 사장님 말대로 가까운 절까지 걸어가서 이번엔 진짜로 손을 모으고 왔음
돌아오는 길에 그 아저씨가 또 귤 봉투를 내밀길래 이번엔 배낭 속 한국 김을 꺼내 드렸음
아저씨는 김을 받더니 나한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음
그 귤은 진짜 달아서 숙소에서 껍질 까다가 손이 노랗게 물들었음
한국 와서 흰 바람막이 입고 동네 뒷산에 갔는데 아무도 손을 안 모아줌
대신 정상에서 막걸리 파는 아저씨가 「한 잔 하고 가」 했음
일본 도쿠시마 민박에서 아침밥을 먹는데 할머니가 내 밥그릇 밑에 나무 상자를 받쳐줬음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집에서 먹던 대로 밥그릇을 상에 둔 채 먹은 게 다였음
맞은편에는 어젯밤 한국어 공부한다며 인사했던 오사카 대학생이 앉아 있었음
할머니가 상자를 받치고 가자 대학생이 자기 밥그릇을 가슴 높이로 천천히 들어 보였음
내가 쳐다보자 대학생은 밥그릇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음
밥이 맛있다는 건가 싶어서 나도 웃으며 끄덕이고 다시 고개를 숙여서 먹었음
할머니가 다시 와서 상자 위에 두꺼운 책 두 권을 더 쌓았음
밥그릇이 턱 밑까지 올라와서 이제 고개를 안 숙여도 밥이 입에 닿았음
내가 밥을 맛있게 먹어서 할머니가 신나셨나 싶어 괜히 뿌듯했음
할머니가 내 허리를 걱정스럽게 쓰다듬자 대학생이 참다못해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일본에서는 밥그릇을 손으로 들고 먹어요」 대학생이 서툰 한국어로 천천히 말했음
일본에선 밥그릇을 들고 먹는 게 기본 예절이라 상에 둔 채 고개를 숙이면 어색해 보인다고 함
할머니는 내가 상이 낮아서 허리를 굽히는 줄 알고 그릇 밑을 높여준 거였음
나무 상자도, 책 두 권도, 그릇을 톡톡 친 대학생도 전부 「들고 먹어요」라는 말이었던 거임
한국에선 밥그릇을 들면 어른한테 혼난다고 하자 대학생이 통역했고 할머니 눈이 동그래졌음
다음 달에 서울 간다던 대학생이 그 말을 듣자마자 밥그릇을 상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음
그러자 할머니가 말없이 상자를 하나 더 가져와 대학생 밥그릇 밑에 받쳐줬음
대학생이 밥을 뿜을 뻔했고 할머니도 손뼉을 치며 같이 웃었음
할머니는 「둘 다 허리 조심해」 하며 도쿠시마 특산 스다치를 한 봉지씩 싸줬음
한국에 와서 첫날 아침 나도 모르게 밥그릇을 들고 먹었음
엄마한테 등짝 맞았음
일본 다카야마 민박에서 저녁상을 칭찬했는데 할머니가 내 등 뒤에 방석을 하나씩 쌓았음
일본어 교재에서 「에라이」가 훌륭하다는 뜻이라 칭찬은 그것만 쓰자고 정해 간 게 다였음
체크인 때 할머니가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에라이」 하길래 칭찬인 줄 알고 「아리가토」 했음
저녁에 할머니가 만든 나물 조림이 나오자 나도 엄지를 들고 「에라이!」 했음
할머니는 깜짝 놀라더니 방석 하나를 가져와 내 등 뒤에 받쳐줬음
구운 생선에 또 「에라이!」 하자 내 등 뒤에 방석이 하나 더 쌓였음
된장국에 「에라이데스!」 하자 이번엔 무릎 담요까지 덮어줬음
옆 테이블에서 밥 먹던 나고야 부부가 젓가락을 멈추고 나를 걱정스럽게 봤음
내 칭찬이 할머니 마음에 쏙 들었구나 싶어서 괜히 뿌듯했음
디저트에도 크게 「에라이!」 했더니 할머니가 내 이마를 짚었고 옆 테이블 부인이 휴대폰을 꺼내더니
「여기서 에라이는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에요」 부인이 번역기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음
기후나 나고야 쪽 사투리로 「에라이」는 훌륭하다가 아니라 힘들다, 지쳤다는 뜻이라고 함
반찬 하나 나올 때마다 엄지 들고 「아이고 죽겠다」를 외친 손님이 된 거임
등 뒤 방석도, 무릎 담요도, 이마 짚은 손도 전부 지친 손님 쉬게 하려던 거였음
그럼 체크인 때 할머니 「에라이」도 계단이 힘들다는 말이었고 나는 거기에 「고마워요」 한 거였음
그 얘기를 들은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웃었고 부부도 같이 배를 잡았음
할머니는 「밥 칭찬은 그냥 '오이시이'면 돼」 하며 과일을 한 접시 더 내왔음
방석 두 장 덕분에 그날 저녁은 진짜로 등 기대고 편하게 다 먹었음
다음 날 언덕 위 절까지 걸어갔다 와서 이번엔 진짜로 「에라이」 했음
할머니는 이번엔 웃으면서 방석부터 깔아줬음
지금도 힘들 땐 「에라이」가 먼저 나오는데 한국 친구들은 다 칭찬인 줄 앎
일본 오타루 언덕길을 운동화 신고 걷는데 모르는 할아버지가 내 앞에 계속 모래를 뿌렸음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1월 오타루 눈 풍경만 생각하고 운동화 그대로 신고 간 게 다였음
언덕 위에서 내려오던 할아버지가 내 발을 한 번 보더니 다시 언덕 위로 돌아섰음
할아버지는 길가 작은 상자 뚜껑을 열고 모래를 한 줌 꺼내 내 앞에 뿌렸음
상자가 나올 때마다 한 줌씩, 내 앞으로 갈색 모래 길이 쭉 이어졌음
모래를 밟을 때마다 운동화 밑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났음
비켜 달라는 건가 싶어 옆으로 걸으면 할아버지도 옆으로 와서 또 뿌렸음
뒤에서 오던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고 웃더니 길 반대쪽으로 비켜 걸었음
오타루 사람들은 외국인한테 길 비키라는 말을 이렇게 하나 싶었음
꼭대기에 도착하자 할아버지가 손을 털고 내 운동화를 가리키며 휴대폰을 꺼내더니
「그 신발로는 이 언덕에서 넘어져요」 할아버지가 번역기 화면을 내밀었음
오타루 같은 홋카이도 언덕길에는 미끄럼을 막는 모래 상자가 있어서 누구나 꺼내 뿌릴 수 있다고 함
한국 겨울에 빙판길 위로 연탄재를 부숴서 뿌려주던 거랑 비슷함
상자마다 뿌린 모래도, 옆으로 따라오던 할아버지도 전부 내 운동화 때문이었던 거임
아주머니가 비켜 걸은 것도 할아버지가 만든 모래 길을 내 몫으로 남겨둔 거였음
그런데 할아버지가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가길래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아래 마트 가던 길이었어」 하며 처음 마주친 쪽을 가리켰음
처음 본 외국인 운동화 하나 때문에 이 언덕을 한 번 더 올라온 거였음
할아버지는 상자 뚜껑을 탁 닫고 「스베루요」(미끄러워) 한마디만 남기고 내려갔음
그날 내려올 땐 할아버지 모래 길만 밟아서 한 번도 안 미끄러졌음
다음 날 바로 신발 밑에 끼우는 미끄럼 방지 밑창부터 샀음
지금도 겨울에 언덕만 보면 머릿속에서 「스베루요」가 들림
일본 나가사키 카스텔라 가게에서 시식 한 조각 먹었는데 내 앞에 접시가 줄지어 놓였음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선물용 카스텔라 하나만 사려고 들어간 게 다였음
도쿄 사는 일본인 친구는 계산대 앞에서 선물 상자를 고르고 있었음
할머니가 한 조각 건네며 길게 말하는데 끝에 「밧텐」이라는 말만 또렷하게 들렸음
일본어 공부할 때 「밧텐」은 틀렸다는 X 표시라고 배웠었음
내가 뭘 잘못 먹었나 싶어서 두 팔로 X를 만들며 「밧텐?」 하고 되물었음
할머니가 놀란 얼굴로 녹차 맛 카스텔라를 새 접시에 담아 내밀었음
한 입 먹을 때마다 할머니는 또 「밧텐」, 나는 또 팔로 X, 접시는 또 하나 늘었음
초코 맛까지 나오자 다른 손님들이 우리 쪽을 보며 웃기 시작했음
나가사키 사람들은 시식도 이렇게 엄격하게 채점하는구나 싶었음
상자를 들고 온 친구가 줄 선 접시를 보고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 손님이 먹을 때마다 맛없다고 팔로 X를 해」 할머니가 시무룩하게 말했고 친구가 통역해 줬음
나가사키 사투리로 「밧텐」은 X 표시가 아니라 「그런데」라는 뜻이라고 함
할머니는 「맛있지? 그런데 이것도 맛있어」 하며 다음 맛을 권하던 거였음
그리고 일본에서 두 팔로 만드는 X는 「싫어요」 「안 돼요」라는 몸짓임
할머니가 「이것도 먹어봐」 할 때마다 내가 「땡」을 외친 거랑 똑같았음
새 접시도, 손님들 웃음도 전부 내 X가 「이 맛도 별로예요」로 보였기 때문이었던 거임
친구가 사실 다 맛있었다고 전하자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웃었음
할머니는 두 팔로 크게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더니 녹차 맛을 한 조각 더 싸줬음
결국 선물용 하나 사러 갔다가 녹차 맛, 초코 맛 상자까지 들고 나왔음
친구는 지금도 내가 메뉴 고를 때마다 「밧텐?」 하고 팔로 X를 만듦
그럼 나는 아무 말 없이 두 팔로 동그라미를 만듦
일본 와카야마 라멘집에서 테이블 위 초밥을 먹었는데 옆자리 아저씨가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음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식탁에 놓인 건 당연히 반찬인 줄 알았음 그게 다였음
도쿄 사는 일본인 친구랑 들어갔는데 테이블마다 포장된 고등어 초밥이 쌓여 있었음
라멘 나오기 전에 하나 까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바로 하나 더 집었음
옆자리 아저씨가 내 앞 빈 포장지를 슬쩍 보더니 손가락 하나를 접었음
내가 또 집을 때마다 아저씨는 손가락을 하나씩 더 접고 사장님 쪽을 봤음
친구도 「반찬이 맛있네」 하며 따라 집자 카운터 손님들까지 우리 쪽을 쳐다봤음
초밥으로 배 채우는 손님을 싫어하나 싶어서 라멘 국물을 더 열심히 마셨음
다 먹고 계산대에서 라멘 두 그릇이라고 하자 사장님이 아저씨랑 눈을 마주쳤음
사장님이 휴대폰 번역기에 대고 말하는 사이 아저씨가 접었던 손가락을 펴더니
「초밥은 먹은 만큼 계산할 때 직접 말해주세요」 번역기 화면 옆에 아저씨 손가락 네 개가 올라와 있었음
와카야마 라멘집은 테이블에 고등어 초밥을 두고 먹은 개수를 손님이 직접 말하는 곳이 많다고 함
한국 포장마차에서 어묵 꼬치 개수로 계산하는 거랑 비슷한데 여기선 꼬치도 없이 손님 말만 믿어줌
아저씨는 우리가 모르는 것 같아서 헷갈리지 말라고 대신 세어 주고 있었던 거임
그런데 도쿄 친구도 「도쿄엔 이런 가게 없어」 하며 나보다 더 놀랐음
접히던 손가락도, 사장님을 보던 눈빛도, 손님들 시선도 전부 우리 걱정이었던 거임
개수대로 말하자 사장님이 「쇼지키」(정직하다) 하며 초밥 하나 값은 빼줬음
아저씨도 엄지를 들고 「쇼지키」 한 번 하더니 먼저 가게를 나갔음
진한 돼지뼈 간장 국물 뒤에 새콤한 고등어 초밥은 진짜 끝없이 들어가는 조합이었음
지금도 친구는 내가 반찬을 집을 때마다 말없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음
그리고 계산할 때 꼭 「쇼지키?」 하고 물어봄
